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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6.02  까미노 데 산티아고 23일차 : 폰페라다(Ponferrada)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 혼자 걷는 길


같이 걸어온 지은언니가 아프다. 자기 전에 언니가 뭔가 으슬으슬 춥다고 했었는데 탈이 났나보다. 일어나서 언니를 깨웠는데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으니 먼저 가라고 해서 고민하다가 혼자 나왔다.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혼자 걷게 되었다. 



​분명 노란 화살표를 따라, 앞서 걸어가는 순례자들을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잃었다. 원래 성곽을 지나 몇개의 마을을 돌아가는듯 했는데 순례길임을 알리는 노란 화살표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구글맵에 순례길이 지나가는 마을을 찍고 추리해가며 거의 2시간 헤멨다. 두번째 마을을 지난 후에야 노란 화살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 ㅠㅠ​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나보다 30분은 일찍 출발한 나이키 아저씨를 만났다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도심을 가로질러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지름길을 걸었나보다. 폰페라다 성곽을 제대로 보지 못한건 조금 아쉬웠다. 아저씨랑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길 잃고 아침을 먹지 못한 나는 이미 아침을 드신 나이키 아저씨와 헤어져 바를 찾았다. 비야프랑카를 넘어가신다고 했으니 아마 길에서 만나는 건 마지막이 아닐까 싶었다. 산티아고까지 잘 완주하시길!



하지만 그 바 마저 마땅치 않아 들어갔다가 도로 나왔다. 마을을 빠져나와 좀 더 걷다가 나온 벤치에 앉아 혼자 납작 복숭아 2개를 먹었다. 간만에 혼자 걸으니 또 기분이 새롭다.


그리고 더 걷는데 웬 숲에 푸드트럭이 ....!!!!!!!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몽이 올라간 바게트 센드위치를 시켜 배를 채웠다. 숲 속에 이 감성 무엇.... 먼저 앉아 쉬고있던 일본인 아주머니가 있어 일부로 그 테이블에 앉았는데 영어로 더듬더듬 이야기도 잠깐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은 일하고 있어서 혼자 오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서로의 나라에 가보고는 싶지만 아직까지 가본 적은 없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순례길에 한국인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고 딸기도 먹으라고 나눠주셨다.


그리고 푸드트럭 주인아저씨가 나와 일본인 아주머니께 직접 농사지었다는 체리 두알씩 먹어보라고 주셨는데 화창했던 날씨, 숲, 그늘아래 조용한 분위기가 정말 환상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주신 체리도 알이 실한게 맛도 있었다.


기억해두려고 카메라 들어서 사진찍으니까 보고 웃어주심ㅋㅋㅋ



그 짧은 숲을 지나면서 뭔가 잠시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일본인 아주머니와 헤어져 다시 혼자 걸으면서 여러 마을을 지나는데, 도로 옆을 따라 걸어야 하다보니 이렇게 순례자의 모습을 한 ​주의 표지판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아스팔트 도로는 발이 아팠고


좀 더 걸으니 넓은 포도밭을 볼 수 있는 흙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오후 1시쯤 비야프랑카에 도착했는데, 막바지에는 넘 더워서 힘들었다.


여기가 오늘 묵게된 비야프랑카의 레오 알베르게 ! 사설 알베르게로 10유로이고 시설도 너무 좋고 정말 친절하셨다. 베드가 많지 않은데 이미 체크인 했거나 예약한 탓에 딱 2자리 남아있어서 다행히 나와 비슷하게 들어오신 한국인 여자분까지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다고 소문난 알베르게인지 안전하게 묵으려면 예약은 꼭 하고 오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현중이가 자기도 비야프랑카 까지 가는데 여기 예약해달라고 해서 말씀드렸더니 다락방같은데 간이 침대를 주셔서 거기서 잤다 ㅋㅋㅋ해리포터 다락방같다며 맘에 들어했다(?) 그렇게 오르비고에서 헤어졌던 현중이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마을이 생각보다 컸다. 디아도 있고 좀 돌아볼 법도 했지만 알베르게가 너무 좋아서 그냥 쉬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크리스와 짐과도 인사했다. 내 아래침대를 썼던 짐은 뉴욕에서, 크리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원래 길에서 만나 같이 걷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파서 하루 쉬게 되어 혼자 걷게 되었다고 했더니 크리스가 너는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물었다. 그래서 혼자 걷는 것도, 함께 걷는 것도 좋다고 대답했는데 내가 했던 대답이 내 스스로 인상 깊게 남았던 모양이다. 또 한참 곰곰이 그동안 걸었던 길을 생각해보게 됐다. 남은 한 침대도 같이 걷는 친구자리인 듯 보였는데 그분은 다른 마을에서 묵게 되었던건지 오지 않았다. 

크리스가 저녁에 남은 피자 먹으라고 줘서 먹고 와인도 줬는데 이건 나중에 현중이랑 먹으면서 깔리무초 만들어서 다 마셨다. 그리고 거의 함께 체크인 했던 은지언니(내맘대로 언니라고 부름)랑 현중이랑 마을 좀 돌고 마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은지언니는 뭔가 밖에서 사먹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돈을 흥청망청쓰다 깨닫고 아끼던 시기였던 바람에,,,)  그리고 크리스가 짐싸다 견과류 나눠줄까? 이러길래 냉큼 받고 ㅋㅋㅋㅋㅋ짐하고 크리스가 자기들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갈건데 괜찮냐길래 괜찮다 했더니 코곯는거 이야기 하면서 나랑 짐 코곯면 때려주라고 했닼ㅋㅋㅋㅋㅋ 근데 너가 코골면 내 밑에서 자는 짐이 발로 차주면 된다고 함ㅋㅋㅋㅋㅋㅋ쒸익 쒸익

하튼 되게 편하게 쉬다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좀 흐려지긴 했지만 빨래도 해서 널어두고 그냥 그 공간과 마을 분위기가 좋았다. 산골짜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름 있을 것도 다 있었고! 간만에 언니없이 혼자 자는건 좀 심심했지만, 그래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결국 나라는 사람이 걷고 있는 까미노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까미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산을 오르게되니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