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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20. 5. 17. 16:40

 

 

 

매셋토 10번째 책 :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

 

코로나로 인해 이례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매셋토 ㅋㅋ  선정된 책이 시집인 만큼 이번 모임은 낭독이 목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갬성 풍부한 새벽에 만나자하여 쀼세계 끝나고 자정이 넘은 시간 구글 행아웃으로 모였다. 각자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시와 이유를 말하고 조곤조곤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를 산문으로 적어보는 것까지가 이번 모임의 발제였는데 숙제를 하지 못한 나샛기....(반성1)

 

여튼 대면이 아닌 화상채팅으로, 또 낭독한다는 것 자체가 첨엔 되게 쑥스러웠는데 엇.. 너무 좋았다. 그 시간대에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정말 잘 어울렸다. 신기하게도 전부 다른 시를 골랐는데 이를 바탕으로 써온 글은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혼자 책을 읽을 땐 시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읽다보니 내 마음은 호수요..이런 것만 생각나고 함축된 의미를 모두 이해하긴 어려웠는데, 모임을 통해 나눈 시만큼은 달랐다. 

 

우리끼리 가볍게 시작한 모임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무언가 단단해지는 것 같아 좋다. 나만 더 열심히하면 될 듯 (반성2)

 

마지막으루.. 나는 <소금사막에 뜨는 별>, <툭>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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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에 뜨는 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꿈꿔야 할 문장은
잠언이 아닌, 모래바람을 향해 눈뜰 수 있는
한 줄 선언이어야 할 것
사막 쪽으로 비껴 부는 바람

꿈으로도 꿈꾸던 달의 계곡 지나 이국의 마을
바다에서 솟아오른 사막이 있다
당신은 물을까, 왜 소금사막이어야 하는지

만약 그리움이라는 지명이 있다면
비 내린 소금사막에 비치는 구름 근처일 것이다
끝없이 피어올라도
다시 피어오를 만큼의 기억을 간직한 구름

빗물 고인 소금사막에 떠 있는 기억의 신기루
그 풍경을 손에 담으면 구름을 간직할 수 있을까
간직을 꿈꾸게 하는 이름들
구름과 당신이 같은 종족임을 말하지 않겠다

소금사막에 밤이 오면
별, 하늘을 찢고 나온 고통 한점

오래 쏟아지는 별빛에 살갗이 아플까
당신은 이불깃을 끌어당기며 움츠리겠지
다독이다 뒤척이다
럼주를 구하러 마을을 기웃거리면
문득, 골목 끝 비상약 파는 가게에서
발효된 사탕수수 향을 맡게 되겠지
운명은 종종 독주를 비상약으로 처방하고
그 밤 우리의 감행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을까

버리고 가자는 말보다
다만, 두고 가자
잠언에 시달리다 감행을 포기하는 당신이라면
영원을 기다리는 선언은 소금알갱이로 부서지겟지
당신에게 소금사막은 여러 지명 중 하나

저만치 비상약이 보이는
밤의 창문을, 서성이다 가는 바람


 

빛줄기 하나 텅 비어 바닥을 향해 있다

못이 박혀 있던 자리에 남은 구멍
여백을 견디던 벽에게 못은 무엇이었을까
한 점으로부터 출발했을 여백
벽에 구멍을 낸 것도 막고 있던 것도 못이었다
어떤 중심은 돌출일 뿐
그러므로 벽과 못은 상극일까

중심이었을 때조차 못의 허기는 허공에 닿아 있었다
낙화가 허공에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떠 있는 것들에게 가장 불편한 이름, 허공

떨어지기 직전 가장 뾰족했을 못의 촉수
중심을 견디던 내부의 힘으로
툭, 못이 가까스로 잡고 있던 벽을 놓친다
오래된 견딤일수록 결별의 시간은 짧고
툭, 심장이 가까스로 잡고 있던 마음을 놓친다
마지막 소리로 제 숨을 거두어 가는 것들
흩날리는 꽃을 보는 나무의 그늘이 깊다

지친 독이 못에 퍼져 있다, 푸른 전갈
바람 한 필 걸어둘 수 없다는 벽과
다시는 너라는 중심에 박히지 않겠다는 다짐 사이
닿을 소식은 닿는다 바람으로라도
툭, 멀리서의 부음이 떨어진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없다 다만 소식이 있을 뿐

푸른 전갈, 감은 눈 속으로 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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