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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8. 6. 9. 23:38


딱 1년 전, 나는 콤포스텔라에 있었다.

799km, 그리고 4일을 더 걸어 약 900km를 어떻게 걸었나 싶다가도 한번쯤은 다시 가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은 아니고 한 서른 넘어서? 누가 등 떠밀어서 간 것도 아니었고, 종교적 신념도 아니었다. 생장으로 떠나는데 영향을 미친게 있다면 아마 그건 19살의 나였을거다.

가끔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에 샤워를 하고, 2층 침대 88개가 한방에 모여있는 눅눅한 방에서 베드버그에 물릴까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잤다. 걷는 중에 비가 거세게 내려 쫄딱 젖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메세타에 발목이 퉁퉁부어 힘든 날도 많았다. 오르막, 내리막에 평지까지도 어느하나 쉬운 길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가 딱 어울리는 게 까미노 데 산티아고다.

생각할 시간이 넘쳤다. 걸으면서 나에 대하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딜봐도 가슴 탁 트이는 풍경 뿐이었고, 길에서 먹었던 음식도, 들었던 음악도 모두 그 길을 함께했다. 까미노가 아니었다면 이름도 몰랐을 스페인의 수 많은 마을을 만났고, 그 때 길을 걸었던 사람들과 순간을 공유했다. 안그래도 해가 늦게 떨어지던 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서 긴 하루를 보냈다.

점점 잊혀져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가는 기억들이 아쉽다. 모든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은데 막연한 그리움만 남았다. 스테파노가 마지막날 헤어지면서 장난으로 "See you next life"라고 했는데, 말마따나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테니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누군가는 그걸 아직도 곱씹고 있냐 물었지만 한 5년은(ㅋㅋ)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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