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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6.05 까미노 데 산티아고 26일차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바르바델로(Barbadelo)


오늘은 사리아를 넘어 바르바델로까지, 22km 정도를 걷는다. 사실 며칠 전 진님에게 바르바델로에 베드가 없어 다음 마을까지 넘어가야 했다는 말을 들어서 좀 더 서둘렀다. 오늘 오 세브레이로에서 내려오는 지은언니와 아재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갈까도 고민했지만 내 자신 스스로가 계속해서 걷고 싶다는 걸 느껴 그냥 걷기로 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나의 까미노니까.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않은 시점에서 조용히 걸으며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 그리고 산티아고를 끝으로 그 후 일정은 무조건 바이 부스!를 외쳤던 나였는데 정말 피스테라까지 걸을까? 라는 마음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거기까지 걷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아서 말이지



어제 점심 먹었던 식당을 지나 



말로만 듣던 사모스와 산실 갈림길을 트리아카스텔라 마을 끝에서 바로 만나게 된다. 사모스로 가면 오래된 수도원을 볼 수 있지만 산실보다는 7km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오리지널이 산실이라 하니, 사모스로 걷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며 산실 쪽으로 걷기로 했다.



좀 더 걸으니 숲길 옆으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은 갤러리를 만날 수 있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보니 주인인 듯 보이는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조용히 눈 인사를 하고 걸려있는 그림과 엽서를 구경하다가 그냥 나왔는데, 좀 걸어가다가 왠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다시 되돌아가 엽서 두 장을 샀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 어제까지 계속 흐렸다가 개인 덕분인지 걷기 좋은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등산과 산길의 연속이 참 좋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눈에 담아가고 싶은 풍경 뿐이었다. 구름이 깔린 마을, 산, 그리고 길이 마치 무릉도원 같기도 하고.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엄마아빠와 헤어져 혼자 런던행 비행기를 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한명한명 떠올렸다. 참 많더라. 잠깐 스쳐간 사람이든 친해져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연락을 주고 받게 된 사람이든, 여행이라는 이 길에서 만난다는건 누구든 참 소중한 인연이다. 5월 4일에 떠났으니 한달을 꽉 채운 셈인데 그 시간동안 나는 변했을까, 이 길을 걸으면서 난 뭘 느꼈을까, 왜 걸으려 했던건 지 그 답은 찾았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살짝 알 것 같은 건 어떤 상황이든 그때의 내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뒤집는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는 것 뿐이다. 

이곳에서 수 없이 했던 생각들, 다짐들. 돌아가서도 길 위에서 느꼈던 감정 잊지 않고 살아가야지



걷다가 쉴 겸 간단하게 뭔가 먹을만한 곳이 나오지 않아 그저 묵묵히 걷다가 딱 적당한 바를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초코빵과 커피가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진짜 직접 만드신 것 같이 맛있었다! 넘 맛있어서 다먹고 크로와상 하나 사서 싸갔다. 그냥 호일에 싸주다보니 부서져 부스러기 만땅이었지만.

그러다 급 바르바델로 알베르게를 예약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바에 부탁하면 전화로 대신 예약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는게 떠올랐다. 부탁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가슴 콩닥거렸지만 바쁘시기도 했고 먼저 부탁하는 걸로 보이는 다른 외국인이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삼십분이라는 시간을 날렸다는 생각에 그냥 나와서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앞서가던 현중이를 마을 초입에서 재치고 (현중이는 어떤 한국인 아저씨와 대화하며 걷고 있었다) 사리아 도착!



화살표를 계속해서 오르막을 향하고 . . . ​



길은 마을 높은 곳까지 이어진다. 탁 트인 곳에서 내려다보니 사리아가 한눈에 보인다. 자전거 탄 순례자인지 여럿 모여 있었는데 나보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해서 찍어줬더니 너도 찍어줄까? 하길래 잽싸게 부탁한다고 하고 한 장 남겼따



본격적으로 순례자가 늘어난다는 마을, 사리아. 산티아고까지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았던 루트 안내용 종이를 기준으로 뒷장, 그리고 마지막 줄 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리아에서도 크레덴시얄을 발급해주고 여기서 시작해도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길게 일정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약 일주일, 100km가 조금 넘는 구간 만을 걷기도 한다. 그래서 순례자가 늘어나 숙소 경쟁이 심해지기도 하고, 확실히 길을 걸은 지 얼마 안돼 마냥 즐거워보이는 사람들이나 가벼운 가방을 맨 어르신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을 빠져나오기 전에 끝자락에 위치한 성당에 들러 세요도 받고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뭔가 센과 치히로에 나올 것 같던 다리

사리아에서 좀 더 걸어 바르바델로에 도착했다.



날씨가 환상적이었던 오늘 사리아를 지나 바르바델로 초입에 있는 Casa Barbadelo에서 자기로 했다. 더 가면 베드가 없을까봐 일단 멈췄다. 레스토랑과 알베르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고, 수영장도 있고 부지도 꽤 넓은게 펜션 같다고 쓰려고 했는데 사진 보니 펜션이라고 쓰여있구나..! 여튼 생각보다 도착은 빨리 했는데, 12시 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얼른 들어가 체크인 하려고 리셉션 앞에서 기다리는데 옆에 체크인하고 있던 외국인 할아버지가 날 보더니 너 산 진짜 빨리 올라가는 거 봤다며 완전 슝 지나갔다고 ㅋㅋㅋㅋ 웃으시면서 말하시길래 아 혹시 베드 없을까봐 막 빨리 걸었다고 덕분에 힘들어 죽을뻔했따고 말해줬다ㅋㅋㅋㅋ



중간에 싸온 크로와상하고 오렌지 주스 따로 하나 시켜서 먹었다. 이걸로 점심을 떼울 심산이었다. 까미노에서 오렌지 주스 없었음 어떻게 걸었을까 . . . 착즙기 짱 . . . 그리고 까미노 뱃지가 여태 본 것 중에 제일 싸서 가장 멀쩡해보이는 것들만 골라 태극기 뱃지 2개 동그란 뱃지 7개를 10유로에 샀다. 호호



오늘의 알베르게! 화장실 샤워실 따로 있어 더 좋다

그리고 알베르게인데 8인실이면 완전 땡큐임



손빨래 해서 널어놓고 한참 쉬었다. 

어차피 주변에 뭣도 없다보니 쉴 수 밖에 없었는데, 진짜 별장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당


날씨가 급 흐려지는 중....소 떼가 지나가는 것도 보았다.

확실히 갈리시아 지방은 길에 소똥도 많고 날씨가 흐리다.



현중이랑 어떤 한국인 아저씨랑 같이 밥먹었다. 현중이는 수프 같은거 따로 시키고, 나는 메뉴 델디아를 시켰다. 근데 이 식사에서 했던 대화는 딱히 한 귀로 흘릴 이야기였어서 기억도 안나고 안 적을란다. 그냥 굳이 여기서까지 남의 대학, 취업 얘기 물어보는 건 무슨 생각일까 싶음


여튼, 자려고 누웠는데 밑에 아저씨 코 엄청 곤다 크은일ㅜ

내일은 지은언니랑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