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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6.06 까미노 데 산티아고 27일차 : 바르바델로(Barbadelo) ~ 포르토마린(Portomarín), 산티아고까지 이제 100km



현중이 먼저 출발하는거 보면서 남은 신발 한짝을 마저 신었다.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하면 되겠다 싶어 먹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딱히 먹을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 걸으면서 가방에 넣어뒀던 질긴 바게트 빵을 뜯어먹었고, 간만에 모자를 벗고 셀카도 찍어보았다. 흐린 날이 많다던 갈리시아 지역답게 오늘도 안개비를 살짝싹 맞으며 걸었다.



그나마 제일 멀쩡한 사진!



갈리시아 지역에 오고나서부터 종종 보이는 순례자 캐릭터도 보고



작은 개울 옆을 따라 걷다가



그렇게 약한 안개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어쩌다보니 먼저 출발했던 현중이를 따라잡았다. 아침 물어보니 현중이도 아직 안먹었다기에 조금 더 걷다 만난 바에 들어갔다.. 수제같은(?) 토마토 소스가 올려진 바게트와 카페 콘레체를 시켰다.


 

그리고 만난 100km 표지석



현중이한테 부탁해서 한장 찍었는데 별로여서(?) 타이머 해놓고 다시 찍었다. 외국인들은 슥 보고 그냥 지나가는 걸 보니 그들에겐 생각보다 감흥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찍었던 사진으로만 봤던 표지석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묘하긴 했다. 100km라면 이제 거진 3일정도 일정이 남은 셈인데, 27일째인 지금까지 약 700km 안되는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이제 100km만 가면 산티아고란다. 이 숫자는 이제 3자리수가 아닌 2자리수가 되었고, 곧 1자리수로 줄어들 것이다.



아침을 해결한지 얼마 안됐는데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 둔 도나티보 부스를 만났다. 

역시 지나치지 못하고 동전을 털어넣고는 과일주스 하나를 집었다. 

 


갈리시아 지역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표지석은 키로수가 적혀있다고 하지만, 사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사람들이 키로수 표시만 다 떼갔는지 죄다 그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7km지점에 있는 라면 판다는 곳! 지금까지 라면 판다는 중국 식료품점, 식당에 한번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좀 땡겼다.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니 카레, 햇반, 신라면 등 되게 많았다. 그만큼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들러 사가는건지 한국어로 된 설명도 여기저기 붙여놓았다. 그외에도 뭔가 구경하고 싶은 기념품들이 많아서 오래 머무르며 둘러보았다. 오늘 포르투마린까지 갈 예정이라 촉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



남자친구한테 주고 싶은 실팔찌 하나와 신라면 봉지로 된거 2개, 햇반 하나, 새우탕컵 하나를 샀다. 이걸 사는데 무려 10유로나 썼다. 한 손에 스틱 두개, 한 손에 봉다리 하나를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포르투마린으로 가는 길 옆으로 유채꽃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구름이 점점 걷히고 날씨가 맑아졌다.


 

오늘의 목적지 포르토마린!

11시 반쯤 도착했다. 현중이는 오늘 곤자르라는 마을까지 간다고 해서 헤어졌다.

 


원래 가려던 숙소가 있었는데 이 마을이 좀 언덕배기에 있어서 가려던 곳 말고 중간에 괜찮아 보이길래 그냥 들어갔다. 알베르게 paso a paso인데, 여기도 시설 넘 깔끔하고 친절했다. 세요도 짱예쁨


오늘 걸은 거리는 18km, 현중이따라 더 걸을 수도 있었지만 이 마을에서 묵고 싶었다.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뒤로 처음으로 정말 강다운 강을 볼 수 있었고, 맑아진 날씨가 한몫했다. 지은언니도 아재들과 함께 오늘 포르토마린까지 온다기에 너무 잘됐다하며 리셉션에 3베드를 더 예약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알겠다고 했다.

씻고 빨래하고 뒷 마당에 널어둔 뒤 물 끓여서 오늘 사온 새우탕 하나를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젓가락도 고급진 걸로 줬다. 유럽에서 둘다 보기 귀한 것들인데 쿡.. 가격은 비쌌지만 너무너무 맛났다.



쉬다가 혼자 마을 구경하러 나왔다!​


날씨 몬일이야..(슬슬 더워짐)

마을 돌아다니다가 골목 사이로 크렉이 지나가는 걸 봤는데 놓쳐서 인사는 못했다.

 

 

동네 한바퀴 구경하다가 슈퍼에 들러 과일을 샀다. 오늘은 표주박처럼 생긴 여기 배를 사봤는데 달고 식감이 부스러지는 식감이었다. 복숭아 하나랑 같이 냠냠

방에 들어와 침대에 앉아 지은언니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왜 안오지 하고 있는데 같은 방 사람이 말을 걸었다. 동양인이고 한국인인 것 같긴 했는데 내 성격상 먼저 말 걸기 어려워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야기 나눠보니 한국인이 맞고, 까미노에는 아버지랑 같이 오셨다고 했다. 아버지 페이스에 맞춰 걷다가 피스테라까지 걷고 싶어 아버지는 길에서 만난 분들과 마저 걷고 이분은 혼자 전보다 빡센 일정으로 걷고 계신단다. 피스테라 찍고 돌아와 산티아고에서 아버지 마중나갈거라고 하셨다. 

얘기 좀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와서는 왜 예약자 안오냐며 재촉했다. 당연 예약자가 있어서 돌려보낸 순례자도 있을테니 나도 덩달아 똥줄이 탔다. 그런데 마침 언니에게 마을 입성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막 마중나갔는데 저 멀리 마올로가 보였다. 그 뒤로 언니도 보이고 스테파노는 한참 뒤 절뚝거리면서 왔다. 그리고 다른 이탈리아 친구들도 함께 포르토마린까지 왔다. 이게 얼마만이람! 언니를 다시 만나게 되서 넘 좋았다.

주인 아재는 예약자 3명이 당연 한국인 세명이 더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 여자, 스위스 할배, 이태리 아재가 함께 오니 웃겼나보다. 셋이 시끌시끌 떠들며 체크인을 했다.

 

 

5시가 넘었지만 언니가 샤워하기 전에 밥 먼저 먹고 싶다고 해서 둘이 나왔다. 아재들 껴서 먹을까 했지만 먼저 씻는다고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만큼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쇽 나왔다. 구글 지도를 켜서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갔는데 왠지 안땡겨서 그 밑에 있는 Casa Cruz를 갔는데, 여기서 햄버거를 먹은게 정말 신의 한수였다! 정말 맛있었음. 그리고 언니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참 떠들었다. 아직도 생각나는게 가게 주인이 넘 친절하기도 했고, 도장도 찍었다. 햇빛 비치는 강 뷰도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마을 한바퀴 또 돌구 기념품 가게 구경하고, 마트에서 먹을거 사면서 언니랑 아이스크림 한개씩 사먹었다. 돌아와서 언니 씻는동안 내려와 있는데 거기서 쉬고 계시던 한국인이 말을 걸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서로 입털기 시작해따. 이름은 진혁님..(지금은 진혁쓰 또는 진혁오빠) 신기하게도 인천으로 가는 같은 비행기를 타는 분이었다. 나보다 한살 많았는데 생각해보니 내 이름은 말 안해준게 함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체리도 나눠주시고 쥬스도 한잔 얻어마셨다. 그리고 10시 넘으니 졸려서 다들 자러감

우연히 들어간 알베르게도, 먹은 음식도 만난 사람들도 반갑고 좋았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