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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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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까미노 데 산티아고 29일차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 아르수아(Arzua), 혼자를 기르는 법



오늘은 6시 20분쯤 나와 어제 사둔 풋사과 하나를 베어물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짙었던 밤하늘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때 걷기 시작했는데, 동이 틀 무렵에는 구름이 적당히 있어서 그런지 하늘이 참 예쁘게 물들었다.


7시 좀 넘어서 어제 언니와 아재들이 묵었던 마을을 지났다. 오늘 좀 일찍 나오려고 했던건 혹시나 지은언니랑 마주칠까 싶어 열심히 걸었던 것도 있었는데, '아 벌써 갔겠다, 못 만날 수도 있겠네' 생각했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쫌 더 가니 바에서 뭐 먹고있드라 ㅋㅋㅋㅋㅋ 이때부터 언니랑 오랜만에 같이 걷기 시작했다. 서로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내일은 어쩔건지도 함께 이야기했다.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평소보다 좀 덥게 느껴졌다. 꼭 비닐하우스 온실 안에 들어간 것 마냥 더워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어제까진 스틱없이 뛰어다닐 정도로 뭔가 다리가 가볍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은 또 어찌나 무겁던지 가방도 넘 무겁게 느껴졌다. 어제 먹을걸 좀 사서 가방에 넣었는데 그 탓일까. 쨌든 내가 이런 날씨에 유독 걷기 힘들어하는걸 언니도 알고 있어서 같이 쉬엄쉬엄 걸었던게 생각난다. 언니 정말 1004..



점심 쯤 뽈뽀가 유명하다던 멜리데를 지나며, 그냥 지나치기 아쉬우니 말로만 듣던 그 뽈뽀를 먹고가기로 했다! (사실 멜리데까지 오는데 힘 다 빠짐) 앞서 걷던 아재들은 다 보내고 언니랑 단 둘이 먹음 크큭 문어 비린내 하나도 안나고 맛있었다. 

위치도 기가 막히게 노란 화살표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레 지나는 곳에 있어서 지나칠 수 없음. . . . 



아재들하고는 리바디소에서 다시 만났는데, 아르수아 오는 길에 마오루가 길가에서 뜯은 작은 꽃을 하나씩 줬다. 약간 시들시들한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마워..찡..



그렇게 오늘은 아르수아까지 왔다. 이제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단 39km.

쉬다 걷다 쉬다 걷다했더니 간만에 3시 넘어서 도착했다. 언니와 아재들은 내일 산티아고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5km 뒤에 있는 마을까지 간다며 떠나갔다. 원래 언니랑 알베르게에 부엌 있음 내가 가지고 있던 라면 파 송송 넣어서 끓여먹으려고 했는데 숙소에 부엌이 없어 계획 실패다. 안뇽...

추천받고 미리 예약한 오늘의 알베르게는 Cima do Lugar. 비교적 문 연지 얼마 안됐다더니 무지 깔끔하다. 주인 아저씨도 넘넘 친절하셨다. 그리고 둘러보니 한국인이 나밖에 없는 것도 처음인 듯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동양인이 있긴 한데 대만쪽 같기도 하고. 여튼 오늘은 정말 혼자다.



손 겁나 탔고요..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어놓고 누워 쉬다보니 금방 6시반이 되어 슬그머니 일어나 혼자 마트에 갔다. 첨 보는 마트였는데 살만한게 너무 많아서 급 신이 났다. 디아보다 훨 좋음ㅋㅋㅋㅋㅋㅋ오늘 야채같은게 먹고 싶어서 파스타 섞인 샐러드를 샀는데 오예 진짜 최고 잘샀다. 2.49유로에 가성비 짱.. 완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거랑 배 딱딱한게 있길래 사고, 녹색사과랑 작은 복숭아인지 자두인지 살군지 모르는 과일도 샀다. 궁금해서 샀는데 별로면 납작 복숭아랑 체리나 먹어야지.. 여튼 새로운 마트 구경에 신나서 단톡방에 자랑두 하고 포크 없었는데 주인 아저씨가 본인 집에서 쓰는 포크도 가져와 빌려주셔서 ㅠㅠ 넘 감사했다. 역시 친절해.....



한국 배는 보통 동그란데 비해 이렇게 표주박처럼 생긴 배들 너무 귀엽당...​



크레덴시얄에도 딱 5칸이 남았다. 



그날 밤 썼던 일기


시간은 한국시간이라 안맞음ㅋㅋ..


쨌든 내일 산티아고에 들어가게 되면 거의 40km를 걷는 일정이 되버려서 5km나 10km 전 마을에서 한템포 쉬고 들어가는게 일단은 원래 내 계획이었는데 계속 고민이 됐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정! 언니한테 나도 내일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될지는 내일 걸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쩌면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는 오늘이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