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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5.22 까미노 데 산티아고 12일차 : 아헤스(Ages)~부르고스(burgos), 3분의 1


다시 가방을 메고 걷기 시작한 날. 사람들로 북적이던 마을도 새벽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각이지만 하늘의 색깔만 봐도 구름 한 점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찬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알베르게에서 가까운 작은 바가 열려있어 아침을 먹고 출발할까도 생각했지만 우선 그냥 걷기로 했다. 그립겠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조금 걷다보니 진님이 말씀하셨던 박물관이 보였고 진님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이 보였다. 열린 바는 없었다 .. . . .



서서히 해가 뜨고 아침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자갈, 돌이 많은 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십자가를 만날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어떤 이는 이 십자가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언덕을 넘고 내리막이 나와 성큼성큼 걸어 갔더니 저~멀리 빨간 가방의 진님이 보였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했지만 워낙 앞서가고 계셨다. 여튼, 언덕을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한쪽은 마을을 지나치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바로 마을을 지나지 않고 부르고스로 넘어가는 길인 듯 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 배고팠던 우리는 일단 마을 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지만, 지나치는 마을이 작아 바나 카페조차 보이지 않았고 거의 스쳐 지나가다시피 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그 두 갈래 길은 하나로 다시 모아졌고, 심지어 다른 길이 더 짧은 것 같았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나온 편인데 이 사이에 아헤스에서 머물던 아재들 느지막이 나와서 우리 다 재쳐 지나감..



그리고 만난 오아시스...카페 ㅠㅠㅠ 걷는데 하도 쉴 데가 안 나오니까 다들 여기서 쉬고 있더라. 한국 아줌마들, 진님도 만났다. 지은언니랑 현중이랑 셋이 앉아서 먹으면서 보니까 이 카페를 그냥 지나쳐가는 사람은 별로 없긴 하더랬다. 세요도 찍고 화장실도 가따옴. 여기 진짜 까미노 길 중에 거의 탑으로 꼽을만큼 맛있다. 저 과일쥬스 존맛탱

본격적으로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길. 까미노 길 중에 짱 큰 도시 중 하나인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데 또다시 두 갈림길을 만난다. 하나는 강인지 시냇물인지를 지나고 여하튼 풀과 나무를 볼 수 있는 흙길 그리고 우리가 걸어간 공항 옆 미칠듯한 아스팔트 길..ㅋ....이 두 갈래 길을 만나면 무조건 흙길로 가야 한다. 정말 후회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늘도 없고 아스팔트에 계속 뒤쳐지고 너무 힘들어서 다리 질질 끌고 다녔다...하...잊지모태... 앞서가던 진님은 흙길로 빠졌는데 왜 우리 보고 일로 가라고 말 안해줬냐며...원망시러웠다...어쩐지 정말 걷는데 앞뒤로 사람이 1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걷다 만난 부르고스 표지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배고픔과 다리아픔을 참지못하고 일단 보이는 식당에서 메뉴델디아 10유로짜리 점심을 먹었다. 저 메뉴에도 참 할 말이 많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밥 + 계란후라이 + 케찹의 조합을 스페인의 한 도시에서 만날 줄 누가 알았을가.....


그렇게 

꾸역꾸역

도착한........부르고스의 무니시팔 ㅠㅠㅠㅠㅠㅠ


시간은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고, 빨리 온 줄 알았는데 엄청 늦은거였다. 5층을 배정 받았는데 그것마저 다 찼더라면 무니시팔에 들어오지도 못할 뻔 했다. 지은언니가 아래층 구경하고 오더니 "다연아 니 밑에 구경가지 마라ㅋㅋ우리 층 완전 후져보여.." 라고 했다. 얼마나 좋길래 하며 또 1, 2, 3층 구경가니까 이해가 됐다. 꺄륵



무니시팔에서 나와 뒷길로 좀 걸어가다보면 부르고스 성당이 보인다.​



진짜 넘모 머싯다​


안그래도 다른 박물관들이 월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았고..... 대성당 마저도 월요일에 휴무라는 말이 있어서 (마침 월요일이었음) 못가는 건가 싶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크렉이 ㄴㄴ 성당 열려있음 나도 다녀왔다고 알려줘서 언니랑 현중이랑 호다닥 성당에 갔는데 떡하니 운영 중이었다! 순례자라고 4.5 유로로 할인 받은 가격에 표를 살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가는 길에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쉬고있던 스테파노 아저씨를 만났는데 열려있으면 자기 표도 좀 사다달라고 부탁받아서 언니는 스테파노 만나러 갔다. 나랑 현중이는 일단 들어가서 각자 성당을 돌아봤다. 



그 날 나는 '그렇게 정교하고 섬세한 건축물은 처음이다. 할인 받았지만 원래 가격이었더라도 그 값어치는 더 했을 것이다. 넋놓고 봤다.'는 이야기를 일기에 썼었다. 나중에 들어온 스테파노 아저씨랑 지은언니 구경하는 데 쫓아가 스테파노 아저씨의 설명도 들었다. 언니가 중간중간 번역해줌..ㅎㅎ


맨발​


스테파노와 투샷


지은언니가 사진 찍어주는데 지켜보고 있던 다른 외국인 여성분이 셋이 앉아보라며 자신이 찍어주겠다고 했다. 근데 때마침 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이 우르르 우리의 뒤로 와글와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찍으면서 언니랑 깔깔대며 웃었다.​



진짜 멋있는 부르고스 대성당



우리가 성당에서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잠시 잃어버린 현중이를 찾아 스테파노랑 마오루, 지은언니랑 다섯이서 카페에 앉아 술을 마셨다. 현중이 덕에 깔리무초를 처음 먹어봤는데 존맛탱



부르고스는 관광도시답게 엄청 크고 볼거리가 많은 대도시였다. 나는 그동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샀다. 소염제, 발목에 바를 튜브형 파스, 발목보호대, 그리고 망가진 다이소 케이블을 버리고 다시 샀다. 지은언니도 유심카드, 레깅스 등 서로 이것저것 사느라 구석구석 한 바퀴를 쭉 돌았다. 



7시쯤 부르고스에 머물고있던 우리언니를 다시 만나 단톡방에서 추천받았던 식당에 갔다. 그런데 현지에서도 맛집이었나보다. 오픈시간 맞춰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5명이서 5메뉴를 시켰고, 맥주 5잔까지 시켰는데 50유로 안되게 나왔다. 엄청 배부르고 기분좋은 밤이었다. (요즘 넘 잘먹는게 문제 ㅎ..) 

이렇게 블로그에도 쓸말할말 너무 많은 관광도시 부르고스에서 2박을 할까 고민했지만 나는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발목이 여전히 부어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소염제 잘 먹고, 오늘 약국에서 산 발목보호대 잘 착용하고, 부르펜도 열심히 발라주고 자야겠다. 그리고 한국인이 운영하고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카스트로헤리츠의 오리온 알베르게에 묵고 싶어서 미리 예약했다. 그렇게 내일, 내일 모레까지는 20km 정도로 끊어서 적당히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 프로미스타 이후로 속도를 내서 일수를 줄여보는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여튼, 언제 이곳에 올까 했었는데 800km의 3분의 1 지점에 왔다. 12일차, 매일 아침이 힘들다지만 점점 걷는데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줄어드는 하루하루가 이제는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돌아가면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미술사도 공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