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1 까미노 데 산티아고 11일차 : 벨로라도(Belorado) ~ 아헤스(Ages), 순례자들의 마을
오늘은 벨로라도에서 아헤스까지 거진 30km정도를 걷는다. 어제 발목이 나간 덕에 오늘은 동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800km를 온전히 내 발로 걷겠다는 건 나와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무리해서 발목이 점점 안좋아진다면 그 약속마저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었기에 가방을 보내고 가볍게 걸으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하는데 발목이 진짜 두동강 나는 줄 알았다. 너무 아팠다. 좀 걸으니 나아지긴 했지만, 아픔을 이렇게 잊고 서서히 작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진곤님, 지은언니, 현중이 까지 함께 걸었는데 발목이 안좋으니 배낭이 없는데도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날이 흐리다.
딱히 어제 아침이랄 것을 산게 없어서 첫번째 마을의 바에서 카페콘레체, 초코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걸었다.
가다가 슬슬 당 떨어지기도 하고 진님이 이곳을 지나치면 당분간 마을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들어가서 군것질거리를 좀 샀다. 젤리 샀는데 진짜 안먹느니만 못한 맛이라 당황했지만 말이다(--)
간만에 산을 탄다.
제일 높은 지점을 지나니
양옆으로 많은 나무 사이, 길을 따라가게 된다.
푸드트럭이 있던 쉼터
이제 산티아고까지 532km
한국도 있다.
간만에 나오는 등산 코스가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후안데 오르테가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걸으니 아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깔끔했던 우리 알베르게!
보통 까미노 메뉴얼을 보면 오르테가에서 멈추라고 되어있지만 한 마을을 더 와서 머무르는 격인데, 아헤스는 수비리보다도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pajar 알베르게에 있고 이 곳 베드조차 다 차지 않았다.
진님따라 한 마을을 더 갈까도 했지만 오르테가에서 만난 아재들이 ㄴㄴ너무멀다 아헤스까지만 가라며 같이 아헤스에서 놀면 에브리띵 다 사준단닼ㅋㅋㅋ 약속대로 스테파노와 마오루가 다 사줌
심리학 교수였던 캘리포니아 여자, 나랑 지은언니, 그리고 아재 둘이 앉아있었고 영어가 통하는 스테파노와 지은언니가 통역을 거의 다 해줬다. (스위스에서 온 마오루는 이태리어를 쓴다.) 마오루가 특히 미국사람을 싫어했다..... 너무 티나서.... 눈치보였음..ㅎ
장소를 옮겨 또 먹고 한참을 떠들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조지 할아버지가 피자도 한조각씩 나눠주었다. 스테파노는 낮잠이 필요하다며 들어갔는데 다 자고 나올때까지 우리는 먹고 떠들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사진은 지은언니가 찍어준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언니한테 나중에야 받았는데 한참 웃었닼ㅋㅋ 표정 왜절애
몇인분이더라 저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30인분이다ㅋㅋㅋㅋㅋ짱큼 엄지 척 들어줬다
뭐 주변에 뭣도 없으니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신청해서 다같이 먹었다. 단호박 스프와
빠에야를 먹었다. 내일 아침까지도 배부를 것 같다.
여튼, 스테파노 아저씨는 이탈리아에서 패션사업을 하고 있는데 휴가내서 왔냐고 물었더니 베케이션이 뭐가 필요하냐며 내가 보슨데ㅇㅇ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조지할아버지는 사실 할아버지는 아닌 것 같고 비슷한 아재인데 걷다보면 앞질러가는 것만 봤지 이야기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까미노를 와보니 어떻냐는 말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진짜 많은 경험을 하고 있어서 기쁘다고 했더니 그 길을 걷는 것을 선택한 너 자신에게 고마워하면 된다고 했다. 후에 걸으면서 더 이상 조지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까지도 두고 두고 기억했다.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그 한 마디 때문에.
아헤스를 순례자들의 마을이라고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날 아헤스에는 순례자들 뿐이었다. 정말 작은 마을이 우리들로 복작거렸다. 우리 알베르게에 한국인은 나와 지은언니, 어제 만난 현중이 셋 뿐이었다. 아주 낯선 곳에서 처음 마주앉은 사람들과 이렇게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것도 전부 나이도 국적도 다른 먼 나라의 사람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까미노를 마치고 난 뒤 어느 날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모두 아헤스를 꼽는다. 그 분위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travel > Euro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미노데산티아고 #13 : 부르고스~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oos del Camino), 메세타의 시작 (0) | 2018.02.12 |
---|---|
까미노데산티아고 #12 : 아헤스~부르고스(burgos), 3분의 1 (0) | 2018.02.11 |
까미노데산티아고 #10 : 산토도밍고 ~ 벨로라도(Belorado) (0) | 2018.01.15 |
까미노데산티아고 #9 나헤라~산토도밍고(Santodomingo de la Calzada) (0) | 2018.01.10 |
까미노데산티아고 #8 로그로뇨~나헤라(Najera), 엎친데 덮친격 (0) | 2018.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