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9. 까미노 데 산티아고 9일차 : 나헤라(Najera) ~ 산토도밍고(Santodomingo de la Calzada), 내가 가장 사랑했던 길
5:19 a.m. 나헤라 알베르게가 침대가 높아 떨어지지 않는가 했는데 다행이 얌전히 잤다.
스틱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까미노 길을 처음으로, 온전히 내 두발로 걸었던 날. 새벽에 지은언니를 깨웠더니 먼저 가란다. 가방을 챙겨나와 느릿느릿 짐을 싸고 있었더니 지은언니가 나왔다. 그리고 길에서 매일 뵙는 어머님 중 한분이 아침으로 한국에서 가져오신 김치큐브를 가지고 김치국밥을 해드셨는데 많다고 조금 나눠주셨다. 김치큐브라니 저런 걸 챙겨왔어야 했는데 8ㅅ8 따뜻하고 맛있었다. 어제 산 빵, 복숭아, 요거트까지 해치웠다. 그렇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지은언니랑 함께 출발했다.
어제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갠 후라 그런지, 이날 아침은 순간 순간이 장관이었다. 땅은 아직 젖어있었다. 덥지 않고 적당히 선선한 것 까지 완벽했다. 스틱이 없는 내게 언니는 한쪽이라도 빌려주려고 했는데 극구 말렸다. 그냥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당
해를 등지고 걷는 우리가 보는 길의 모습
걷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이렇다.
덜 마른, 이제는 꼬질해진 양말들을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내 주황 양말이 무슨 로켓 부스터 단 것 같아 한참 웃었다.
아소프라로 가는 길목
마을에서 쉬고 있던 진님을 만났다.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맥주 한 잔 하고 계셨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같이 앉아서 좀 쉬다가 출발!
내가 너무너무 사랑했던 풍경
눈에 담고 카메라로 찍느라 계속 뒤쳐지곤 했다.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인지 밀밭인지 여튼)
그리고 곧게 뻗은 길
언니가 사진 찍어준대서 튀는 주황이 양말을 빼부렸닼ㅋㅋㅋㅋㅋ
걷다 만난 어제 그 스위스 할배. 꼭 지나갈 때 휘파람 불면서 지나간다.
아니 바나나뭐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겨가지곸ㅋㅋ
확실히 스틱이 없으니 어려움이 있었다. 다리가 천근 만근. 그런데 날씨와 길이 너무너무 예뻐서 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오래 걸을 수 있었다. 걷다가 만난 도나티보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납작 복숭아도 먹었더랬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지은언니와 12시 좀 넘어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물론 도착할 쯔음엔 발이 무지무지 아프다. 무니시팔은 생각보다 좋았다. 7유로에 시트는 1.5유로, 깔끔했다. 원래 1층을 배정 받았지만 2층 침대를 배정받은 우리언니가 발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바꿔주었다. 우리언니는 결국 더 이상 걷지 않기로 했다.
1층에서 체크인을 하고 2층에서 찍은 모습. 부엌과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쉴 수 있는 쇼파 등이 마련되어 있다. 순례자들의 숙소는 3층이다.
지은언니와 알베르게 근처에서 11유로주고 사먹은 점심! 힘들어서 요리도 못하겠다 밥이나 맛있는 거 먹자 하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여지껏 이렇게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은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신세계였다. 저 양고기 먹으며 감탄에 감탄을... 와인도 주고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까지 ㅠㅠㅠ 성공적이었다 큭큭
어제 비에 젖었던 옷들 깔끔하게 빨래도 하고 알베르게 옆 스포츠매장에서 새 스틱을 구입했다. 내 44유로... 그리고 겸사겸사 오래걸으면 뒷꿈치 쪽이 딱딱해져 아프곤 했는데 이를 푹신하게 해줄 것 같았던 기능성 깔창(^^)도 샀다.
우리언니와 걷는건 정말로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동안 여러모로 챙겨주셨던 진님까지 대접한다고 지은언니와 마트에도 다녀왔다. 크렉은 고기를 못먹어서 샐러드. . . 먹었지만. . . 미안해 ⭐️
주방 전쟁(?)이 심했지만 그래도 배터지게 많이 먹은 날이었다. 고기는 역시 고기다
문 닫기 전에 가까스로 성당 구경도 하고
돌아와서 와인 한 팩 혼자 조지고 있던 크렉이 와인을 나눠줬다. 안되는 영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답답했을텐데 천천히 기다려주고 내 이야길 들어줬던 내 첫번째 아일랜드 친구 :)
벌써 한 바닥을 채워가는 내 크레덴샬. 새삼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내일은 벌써 까미노를 걸은지 열흘 째 되는 날이다. 남은 날들도 무사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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