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3 까미노 데 산티아고 13일차 : 부르고스(burgos)~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oos del Camino), 메세타의 시작
메세타. 스페인어로 '탁자'라는 뜻을 가진 지명, 그리고 스페인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내륙 대지. 앞으로 레온까지 약 180km 정도의 거리를 그늘 없이, 끝없어 보이는 하나의 길을 묵묵히 따라 걸어야 하는 바로 그 메세타 평원의 시작이다.
진곤님과 지은언니는 어제 문을 닫아 보지 못했던 박물관을 둘러보고 싶다고 해서 현중이랑 나는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 6시 좀 넘긴 시간이었다. 걷다 보면 마을이 금방 나오겠지 싶어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는데 웬걸, 걸어도 걸어도 마을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9km지점에서야 마을이 나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카페 콘레체와 샌드위치, 챙겨둔 뮤즐리바를 하나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메세타는 역시 우리에게 그늘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빛을 맞는 것보다도 거슬렸던 건, 신발 안쪽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하나였다.
날벌레 많던 하천 옆을 지나
쉴 수 있는 나무그늘조차 없다.
저 어 - 만치 멀리 한 그루 뿐
근데 또 마을이 금방 보이더라. 설마 저 곳이 오늘의 목적지일까 했는데 맞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11시를 조금 넘겨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 20km정도의 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웬일이람.
띠용. 맨날 1~2시 넘겨 도착하다가 너무 이른시간에 도착해서 오히려 더 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르니오스 가는 길에 옥제어머님을 만났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바욘의 기차역에서부터 지금까지 길에서 계속 만나고 있는 한국인 중 한 분이셨다. 아헤스 가는 길에도 만나서 얘기했었지만, 어머님은 원래 남편분이랑 같이 걷기를 계획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기회가 되지 않아서 혼자 오게 되었는데, 혼자 떠나는 게 쉽지 않으니 한국에서 동행을 구해서 같이 오시게 된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제는 일행들과 떨어져서 본인의 페이스대로 걸으려고 하신다고.
어머님은 오늘 오르니오스를 지나 온타나스까지 가신다고 하셨다. 오르니오스에서 온타나스까지는 12km를 더 가야 했기에(총 32km)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대부분 혼타나스까지 갔더랬다. 나는 그 후로 걸으면서 다시 만나기 어려워진 인연들에 대해 오랫동안 아쉬워했다. 이 길에서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마을에 도착해서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현중이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침 길에서 자주 뵙던 부부를 만나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두 분다 너무 잘 걸으셔서 궁금했는데 원래 배낭여행 자체를 많이 다니시는 분들이었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고민하시다가 네팔을 꼽으셨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포함해 무려 7번이나 다녀오셨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께서 나보고 인상이 너무 좋다고..ㅎㅎㅎ 두분 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고,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분들도 온타나스까지 가신다고 했다. 또한 다시 길에서 만나기 힘들어질 것 같아 넘 아쉽기도 했다. 우린 내일도 20km를 가는데.. 많이 차이나겠지.
아쉬움은 일단 뒤로한 채, 좀 쉬다가 근처 다른 빠에서
현중이가 사준 깔리무초
발목이 좋지 않은 시점에서 일찍 도착한 만큼이나 푹 쉴 수 있었지만,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미련이 스믈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 진곤님과 지은언니는 무사히 5시 전에 도착했다. 바람이 좀 불긴 했지만 해가 중천에 뜬 후에 걸으니 더워서 힘들었다고.
- 주변에 뭣도 없으니 저녁도 점심 먹었던 식당에서 사먹었다. 작은 식료품점이 있어서 다같이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 거리(빵, 치즈, 하몽, 야채)를 사는데 총 9유로를 썼다. 현중이랑 샌드위치 만들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일기 쓰다가 잠이 들었다.
- 개인등이 있어서 (비싸지만) 좋았던 숙소. 미팅포인트.
- 론세스바예스 이후로 보지 못했던 이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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