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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6.01  까미노 데 산티아고 22일차 : 폰세바돈(Foncebadon) ~ 폰페라다(Ponferrada), 버리고 싶은 것과 버려야 할 것


새벽 4시 30분에 혼자 일어나서 별을 봤다. 고도가 높고 사방이 깜깜해서 그런지 별이 쏟아질 듯 많아보였다. 카메라로 찍을 것도 없이 두 눈으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다 들어와 좀 더 잤다. 다시 일어나서는 짐을 간단히 챙겨 방에서 나왔다. 마르지 않은 양말을 가방에 달고 대충 가방을 싼 뒤,  조식으로 제공되는 커피, 식빵 3쪽에 네스퀵까지 먹고 6시 30분쯤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알베르게 테라스에 나와 바라본 풍경​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


해가 뜨며 하늘을 물들이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얼마 안걸으니

까미노 길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한 철의 십자가를 만날 수 있었다. 



거의 초반에 진님이 철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버리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있던 돌멩이에 담아 철의 십자가를 만나면 버리고 간다는, 그래서 한국에서 돌멩이를 챙겨오셨다고 했다. 나도 여행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방에 달고 다니던 노란리본에 마음을 담아 걸어두고 왔다. 여러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들을 이해하고 털어내기까지..물론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정말로 버려야 할 것은 오히려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미련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쨌든 눈물 날 뻔...했지만 잘 참았다. 



귀여운 무인 도나티브 트럭을 지나



메세타 길을 걷다가 산길을 걸으니 어찌나 상쾌하고 신나던지! 중간에 언니랑 오렌지도 하나 사서 까먹었다. 물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컨디션이 짱짱 좋았다. 그리고 오늘 만났던 길과 마을이 하나같이 예뻐서 좀 더 머무르고 싶기도 했다. 날씨도 두말할 것 없이 좋았고! 고도의 정점을 찍고 나니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마을 1번 

산 중턱의 엘 에세보


언니랑 앉아서 간식 까먹고



이 이후로 몰리나세카까지 하산하는데 거진 바위길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발에 힘주고 걷다보니 아프기도 했다. 

이와중에 거북이처럼 걸어가는 사람들 제치고 그 길을 우다다다 거의 진심 달리다시피 뛰어내려가는 외국인들 보고 너무 웃겨가지고 

언니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겁나 웃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겹게 도착한 몰리나세카​



너모 예뻤던 마을 2번 ...​

아 여기서 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우다다다 뛰어내려가던 외국인 남자 1명은 그새 여기 누워서 윗통벗고 일광욕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 

날 좋으면 많이들 물에서 놀고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린 거의 7km를 내리 달려왔고 앞으로 7km를 더 가야 하니 몰리나세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깔리무초 한 잔과 또르띠야로 배를 채우고



스페인 길냥이도 보고..ㅇ<-<

다시 출발



언니랑 걷는데 뜬금없이 겁나 오르막이 나오질 않나..... 어이없어서 웃음ㅋㅋㅋㅋㅋ 폰페라다 들어가기 한 2km전? 부터 계속 아스팔트라 (아스팔트에 넘나 취약한 사람들ㅋㅋㅋㅋㅋㅋ) 또 지쳐서 다리 건너기 전 마을 같은 곳 벤치에 앉아 한참 쉬다가 ㅋㅋㅋㅋㅋ 발 식힌다고 신발 벗고 다시 신으려니 답답해서 쓰레빠 신고 알베르게까지 걸었다.



초반에 여긴 언제나 가게 될까 생각했던 마을 중 하나였는데 드디어 왔구나 싶었다. 십자군 전쟁, 템플기사단의 성과 유적이 모여있는 구도심과 신도심이 맞물려 구경할 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는 폰페라다. 우리가 묵기로 한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건지 수도원이었던 곳이 알베르게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꽤 컸고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다. 도착하고 체크인하는데 호스삐딸로 분들이 차 같은 걸 한 잔씩 내어주신다. 배정받은 방은 심지어 4인실! 게다가 요르니우스 이후로 뵙지 못했던 네팔 부부를 만났다.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대로 나이키 아저씨도 이쪽으로 오셨드랬다. 




우리가 배정받은 4인실과 지금껏 같이 고생해주고 있는 나의 배낭...



감사하게도 정말 잊지못할 수제비를 얻어먹었다. 스페인에서 생각치도 못한 수제비라니! 후식으로 수박까지 먹으며 배부른 시간을 보냈다. 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어쨌든 내 자신을 제일 소중히 여기면서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잊지 않아야지..



좀 쉬다가 밤 8시쯤 슬쩍 나가서 구경하고 돌아왔다.



- 현중이는 몰리나세카, 진님은 모르고...... 스테파노랑 마올로는 폰세바돈이라는데 ㅋㅋㅋㅋ 뭐야 ㅋㅋㅋㅋㅋ?!

여튼 그래서 지은언니와 나는 왠지 모르게 매우 업 된 상태다. 저녁에 마신 와인 탓에 더 그런 것일 수 있음

- 더 구경하고 싶은데 발 아파서 못하겠다.

- 빨래했다!!!!!!!!!!!!

- 300 유로를 인출했다

- 인출한건 딱 100유로만 까미노에 더 사용할 예정

- 지은언니에게 한국 돈으로 송금해줘야함

- 새로운 한국인들도 만났다. 사실 어제 라바날에서 그 추레한 모습으로 슈퍼를 식당인줄알고 들어갔다가 도로 뒷걸음치며 나오면서 한국인 세명을 봤는데 바로 그 남자분 3명이었다. ㅋㅋㅋㅋㅋ 한명이 맥주마시라고 주고갔다. 저녁에 잠깐 모여서 얘기했는데 셋이 너무 잘어울리셨다..나랑 지은언니처럼 여기와서 처음 만났다는데, 어쩜 그렇게 죽이 척척 잘맞던 씨꺼먼쓰..!

- 언니랑 방에 누워서 별것도 아닌데 깔깔 웃던 것도 ㅋㅋㅋㅋㅋㅋ

- 발목이 많이 좋아졌다.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