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9 까미노 데 산티아고 19일차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Mansilla de las Mulas) ~ 레온(León), 재회
까미노 19일차. 어제밤 호스피딸로분이 빌려주신 옷이 반바지인 데다가 침낭도 없고 베드버그도 걱정돼 걸을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잤었다. 침낭없이 자니 조금 춥긴 했는데, 따로 쌀게 없다보니 준비는 금방하고 나올 수 있었다. 덕분에 또 다시 가방 없이 걷게 된 오늘... 좋은 건가..ㅎ
도로 옆 개울이 있었는지 물 안개가 가라앉아있었다. (무슨 원리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남)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무인 밴딩머신존을 지나
레온으로 가는 길. 오늘 걸어야 하는 18km는 이전까지 걸어온 것에 비하면 비교적 짧지만, 지은언니에게 와썹으로 보낸 스테파노의 음성메세지가 넘 웃기기도 했고, 웃기기만 했던 그 메세지 끝에 아침 10시에 레온 대성당 앞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그제서야 알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비도 오고 발이 아파옴에도 불구하고, 얼른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맘에 쉴새도 없이 거의 뛰다시피 했다.
큰 도로를 따라 아스팔트로 된 길을 걷다가 노란 화살표를 따라 빠지니 흙길이 이어졌다. 미리 일기예보를 봐서 알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날씨가 흐려지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레온까지 사진이 없는 것도 이 탓이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할 때쯤 판초를 입었는데 걷다 보니 비가 더 많이 내린다. 걷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멈춰 주섬주섬 비를 막을 수 있는 판초, 우의 등을 입는 사이 나는 그들을 제치고 계속 걸었던 게 생각이 난다.
큰 육교를 지나 저 멀리 레온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레온주의 주도시인만큼 구도심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푹신푹신한 흙길도 아니고 딱딱한 아스팔트 또는 벽돌로 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만시야에서 레온까지 4시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일단 짐이 없고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인지 도착은 9시 반쯤? 한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먼저 머물고 있던 우리언니의 위치를 찾다가 시내에서 헤메는 바람에 짜증이 조금...났지만..(아니라고는 말 모태..) 일단 18km 를 달린 탓에 너무너무 쉬고 싶어 단톡방에서 추천받은 카페를 찾아갔다. 이름은 노르디코(nordico).
길에서 만나던 바나 카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세련된 곳이었고 1.2 유로에 빵 2조각과 카페 콘레체 한잔을 아침메뉴로 제공하고 있었다. 심지어 맛있기까지 . . 그리고 그땐 생각 못했었는데 그 시간에 커피마시러 온 손님 중 순례자가 나 하나인데다가 내 옷차림이 어두컴컴한 회색 판초 뒤집어 쓰고 간 바람에 손님이나 종업원이나 당황스러울 법도 했을 것 같다. 근데 그런 느낌을 단 한번도 받지 못했고 그냥 친절했던 것만 떠오른다. 무튼, 앉아서 좀 쉬고 있는데 지은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스테파노와 마올로가 성당 앞이라고 한다.
지은언니도 혹여나 둘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지금 대성당을 보고 알베르게에 들어갈까 생각 중이라고 해서 남은 빵과 커피를 후딱 먹고 성당 앞으로 뛰어갔다. 현중이는 먼저 숙소 가고, 언니랑 둘이 성당 티켓 사서 (6유로) 입구를 서성이는데 두 사람이 나오는게 아닌가ㅠㅠ.. 부르고스에서 요르니우스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보고 딱 1주일 만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클로이까지 길에서 만나 다섯이서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 사진부터 찍고 가까운 까페에 들어갔다. 스테파노가 사줘서 빵이랑 커피를 또 먹고 서로 잘 지냈냐며 이야기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왜 그렇게 즐거워했던 걸까. 까미노를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누구는 옷깃만 스쳤던 사이로, 누구는 잠깐 인사를 나눴던 사람으로, 또 누구는 지금까지도 잘지내는지 궁금한 친구로 남아 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까미노에서 나이도 국적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지만 우리를 친구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게 좋았던 것 같다.
여튼 스테파노랑 마올로는 어제인 28일에 레온에 들어왔고 일요일인 탓에 성당을 구경하지 못해서 오늘 아침에 본 거고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걷을거라고 했다. 아쉽지만 또 보자며 씨유 레이럴 하고 둘은 떠났다...(그나저나 진님은 대체 어디에 . . . ?)
그때 찍은 사진!
우리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남녀의 방이 구분되어 있고 꽤나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가격은 6유로 정도 냈던 것 같다. 요근래 잘 보지 못했던 한국인 아주머니들, 예지언니와 카메라 들고 다니던 오빠, 그리고 같은 날 생장에서 시작해 며칠간 길에서 보다가 어느 순간 보지 못했던 커플, 크렉과 미쳐 다 적지 못한 외국인들까지 익숙한 얼굴이 정말 많았다. 참, 어제 동키 회사에 말씀드렸던 근처 사립 알베르게에서 가방도 무사히 찾았다!
예지언니와 근수님(카ㅁㅔ라오빠), 현중이 나 우리언니 지은언니 이렇게 6명이서 중국음식 뷔페인 웍을 가기로 했다. 일단 샤워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빨래를 한 데 모아 세탁을 맡겨두고 나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거리가 있어 좀 걸어야 했다.
레온까지 왔는데 날씨가 안좋아 아쉬움이 남는다면 하루 더 머물며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게 나였다. 나였는데, 오전에 비가와 흐렸던 날씨가 이렇게나 맑아졌다. 그리고 스페인 곳곳에 세워진 가우디의 발자취를 레온에서도 만날 수 있었는데, 웍 가는 길에 만난 요 건물은 가우디의 작품이라는 '카사 데 보티네스(Casa de Botines)'다.
'얼마나 더 가야돼?'를 몇번 되뇌인 끝에 웍에 도착했다. 한 25분은 걸은 듯 하다.
이게 얼마만의 . . (입틀막)
말이 필요없따 간만에 이렇게 감자없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고 배뚜둘기며 나올 수 있다니 ㅠㅠㅠ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조켔다..햄복 그자체
크고 웅장하다. 그리고 풍부한 자연 채광으로 본연을 색을 뚜렷이 보여주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견해가 넓지않은 새럼이라 단순히 표현하자면 그냥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멋있는 곳이었다.
비가 오락가락 해서 알베르게에서 판초 가지고 나왔더니 아예 맑아졌다. 조..조은거야
레온에 도착하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며칠 전부터 하고 있었다. 레온에서 편지 보내는 법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어떤 내용을 쓸지 고민했다. 성당에서 나와 건너편에 줄지어있는 기념품샵에서 엽서 3장을 샀다. 한 장은 진짜 기념품으로 내가 갖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남은 2장에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거의 6시? 가 다 될 무렵이라 흔히 말하는 Post office의 업무시간은 지난 것 같아 봉사자님께 엽서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물었더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타바코스(Tabacos)에서 우표를 사서 노란 우체통을 찾았다. 꼬레오스~
엽서 보내기도 성공
초상권 보호,,
엽서 보내고 돌아왔더니 언니오빠들이 타파스 먹는대서 따라나갔지만 적당한 가게를 찾지 못해 맥주랑 과자만 줄창 먹다왔다.
그래도 나름 유서깊은 큰 도시라고 진짜 알차게 걸어다녔는데, 분명 오늘 걸을 길은 18km 뿐이었는데 건강 앱 활동보면 28km에 44,825 걸음을 걸었다고 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드디어 레온이라니, 흐렸음 하루 더 있었을텐데 맑아진 데다가 아재들 만남 콜라보로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 가방을 찾았다! 오예
- 둘(!) 사이가 조금 이상하다 . .
- 그 한국인 아줌마는 왜 구럴깡..
- 우리가 오기 전날 알베르게에 도난사고가 있어 어수선 했던 기억이 난다.
- 샤워 수압이 장난이 아니다. 핫샤워에 수압 최고...
- WOK은 진짜 최고다. 가성비 갑
- 레온대성당.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해도 멋있었다.
-엽서는 2주 걸린다고 함. 잊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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