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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7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SDF)에 여러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디자인 세미나가 마련되어 있다. 유료 강연도 있고 무료 강연도 있는데, 연차 내고 가고 싶었던 금요일은 이미 모두 매진되었고...(ㅠㅠ) 뭐 이미 신청기한이 늦기도 했고, 직접 가서 듣긴 어려워 아쉬운 대로 라이브 방송을 보기로 했다. 딱 두 디자이너의 강연만 네이버 TV캐스트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줬는데 전부는 못 보고,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님 강의를 시청했다.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느낀 것도 있고 강의 자체를 재밌게 잘 들어서 그 내용을 기록해두려고 함.

 

배민다움 - 배달의민족 브랜딩 이야기

 배달 서비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배달의민족, 사실 흔히 말하는 B급 감성을 담은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배민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민트, 그리고 그 또박또박하면서 꾸깃꾸깃(?)한 폰트 한나체일 것이다.

 김봉진 대표님의 디자인은 정말 예뻐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배민의 이야기. 만화 빨간머리 앤의 노래 가사 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 예쁘다는 사랑스럽다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디자인은 결국 상업미술이기 때문에 예쁘기만 해서는 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련되고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나를 끌어당기는 묘한 느낌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라는 말이다.


익숙한 디자인을 할 것인가, 낯선 디자인을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옆 사람을 너무 신경 쓴다며 그래서 다 예쁘고 정형화된, '똑같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낯선' 것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게 자신만의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옛 간판, 입간판 같은 vernacular design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배민의 첫 번째 서체 한나체가 그들의 '낯선' 디자인의 시작이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의 영역에서 과거에는 장식으로서의 디자인이 중심이었다면, 형태와 기능에 초점을 두는 디자인으로 - 그리고 이제는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디자인이 중요시되는 시대가 되었고 이렇게 끌리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정체성은 식별하는데 도움이 되고, 인성은 끌어당기는데 도움이 된다.

홍성태 /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원래의 나와 되고 싶은 나가 있다고 할 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여기서 되고 싶은 나가 바로 브랜드가 되는 것인데, 되고 싶은 나를 위하여 이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인성(페르소나)라는 것이다. 되고 싶은 나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말이다.


배민스러운, 배민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럽다.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배민의 브랜딩은 그들의 하나의 정체성을 잡고 꾸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긴, 배민스럽다, 배민답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배달의 민족은 배달 음식을 시키는 사람은 대부분 그 팀의 막내일 것이고 20대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 타겟을 막내&20대로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B급 감성을, 문구도 이 사회의 막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구들로 지었다고. 굉장히 재밌는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그래도 IT를 담고 있다 보니까 아이덴티티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브랜드 가이드 제작하는데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만들기보단 간단하게 두 가지로. '풋!' '아~' 딱 2가지란다. 일단 웃게 만들고 그 속 뜻을 이해하라는 말이겠지.

이런 십육기가 USB

 배민의 머천다이징을 보면 물건이 갖는 특징에 배민이 갖는 아이덴티티를 더블미닝하는 스타일이다. 잡지 테러 광고 (월간디자인)를 예시로 들면서 말씀하셨던 창의적 제약도 인상적이었다. 제약이 창의성을 일깨우기도 한다는 말. 수많은 종류의 잡지와 그 잡지만의 타겟들에 맞춰 배민스러운 잡지광고를 진행한다. 물론 배민스러운 낯선 디자인으로 말이다. 대신 한 달에 딱 1가지, 단톡방에서 한 달 동안 그것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뱉으면서 자연스럽게 내재화시키며 결과물을 낸다고 한다.

 또, 배민의 옥외광고 이야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멘트 '경희야 넌 먹을 때 제일 예뻐'와 류승룡. 사실 생각해보니 나조차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광고들이었는데, 배민의 타겟층인 막내와 20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에 공유될 수 있도록 노리고 만든 마케팅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100명, 1000명의 경희 프로젝트로까지. 재미지다...


결론적으로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다르고 익숙한 디자인과 낯선 디자인의 차이. 그렇다고 맨날 낯선 디자인을 하면 안 되며 그 낯선 것을 만들었다면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것.덧붙여 지금 했던 디자인들을 잘 남겨두면 후세에 Visual element가 될 수 있다는 것. 

 

자기다운 디자인을 하기 위한 노력

1. 기본기를 익힐 때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2. 낯선 디자인을 시도해 보세요

3. 본인이 지겹도록 꾸준하게 해 보세요.

 

 사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들인 것 같다. 기본을 다지고, 낯선 것을 시도해보고, 꾸준하게.

 무튼, 한 시간이 좀 넘는 강연을 그것도 라이브 방송으로 들으면서 딴짓 안 하고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시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했음. 그만큼 재밌게 들었다. 네이버 컨퍼런스 할 때 20분 넘어가자마자 헤드뱅잉 시작했었는데..ㅎㅎ 이건 사족이지만, 발표 PPT 폰트가 깨져 굴림체로 나와서 적잖게 당황하셨을 텐데 그것마저도 배민의 감성인 것처럼 보여 유쾌하고 또 저런 것 자체도 페르소나라고 보면 되는 건가 싶었다. 낯설고, 또 재밌다. 근데 그 낯섦이 휘발성이 아니라 그 후에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책을 구매하고 싶어졌음.. 기회가 되면 사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