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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5.11 까미노 데 산티아고 1일차 :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다


 밤새 천둥과 함께 비가 내렸다. 베드버그, 날씨에 대한 걱정과 낯선 환경,끊이지 않는 탱크까지.. 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6시쯤 일어나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조식까지 먹으니 6시 반을 훌쩍 넘어가고 있는 시각, 가방을 메고 생장에서 800Km의 첫 걸음을 뗀 시간은 7시가 되기 10분전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27km를 걷는 구간, 많은 사람들이 여러모로 첫날이 제일 힘들다고 했기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출발했다.



날씨가 흐렸다. 예보와 같이 비가 쏟아지거나 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쨍쨍하면 또 더워서 힘드니까, 구름이 있는게 걷기에 좋다고 들은게 생각이 났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실감이 났다. 비슷하게 출발한 러시아 친구 이완이 앞서가기에 같이가자고 해볼까 했지만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이완은 금방 사라져버렸담.. 



그렇게 한참 혼자 걷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걱정이 되지 않았었는데, 오리손(Orisson)까지 가는 초반부 6~7km 지점까지의 오르막길이 제일 진짜 왕 짱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로 첫날 오리손에서 끊어가는 사람도 많이 있단다. 써본 적 없는 스틱, 가방을 제대로 매는 방법도 모르고 한국에서 일체 운동이라곤 하질 않았던 나였기에 더 힘들 수 밖에. 마침 지나가던 한국인 아주머니 두분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다른 사람들은 5시에 출발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너무 뒤쳐져 있는게 아닌가 걱정돼 계속해서 잘 터지지도 않는 구글맵을 들여다 봤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다섯 걸음 걷고 쉬고, 다섯걸음 걷고 길바닥에 앉아 물 마시고 사과먹으면서 아 나 여기 왜 왔지. . . 도착은 할 수 있는걸까 오만 생각을 다했던 피레네



날씨가 비가 올듯 말듯 했지만 '뇌우'라던 일기예보는 점차 아닌 것이 되었다. 산맥이다 보니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 같기도 했다. 비가 안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딱 저 풍경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며


이제 좀 평지가 나오나 싶더니 이번엔 바람이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불었다. 바람이 너무 강한데 정면으로 강타하다보니 스틱을 써도 몸이 휘청거렸다.




나랑 같은 달팽이 페이스로 걷다가 

같이 쉬면서 이야기 나눴던 파란 나시 캐나다 아줌마가 찍어준 사진ㅋㅋㅋㅋㅋ



유독 피레네를 넘을 때 한국인을 많이 못 만나고 (내가 늦어서겠지^^;)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계속되는 오르막에 뒤쳐지고 힘들어하는 날 보고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Slow and Steady." 라던 어떤 할아버지의 말은 까미노 내내 힘들때마다 떠올렸던 기억 중 하나다. 그 말 그대로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잘 완주해야지 몇번이고 다짐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던 피레네.



한참을 걸어올라가니 사람들이 쉬어가는 듯한 언덕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성모상을 보고 다시 길을 떠났고 나는 여기서 조금 쉬다 우연히 크렉과 우리언니를 다시 만났다. 언니랑 크렉은 여섯시 반쯤 떠났다는데 언제 앞지른 거지 라며 곰곰히 생각해봤던.. 아마 오리손에서 쉬지 않고 그냥 지나칠 때 앞지른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걷다 피레네 꼭대기에서 만난 푸드트럭!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여기서 꼭 핫초코를 먹어야 한다기에 대체 언제 나오는거냐며 한참을 걸어올라갔는데, 드디어 만났다. 당장에 가방을 내려놓고 한잔을 원썃... 바람 때문에 몸이 차기도 했고, 밥도 제대로 못먹은 상태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먹었던 핫초코를 잊을 수가 없다. 좀만 늦었으면 철수해서 먹지도 못할 뻔했다. 엉엉... 그리고 세요도 받았다!


근데 5키로를 더 가야 내리막길이 나온다구욥...?



드디어 등장한 내리막길. 이때부터는 사진이 별로 없다. 바람은 덜 불었지만 미친듯이 힘들었기에 침묵하며 걸었다. 그래도 우리언니랑 크렉이 보기보다 너무 잘걷는다며 신기해 함ㅋㅋ 종종 크렉 물을 뺏어먹으며..


사실 그마저도 넘나 험난했다. 사진에 없지만, 엄청나게 가파르다. 스틱 없었으면 정말 무릎 제대로 나갈 뻔 했다. 



크렉이랑 (되도않는) 영어로 조잘조잘 떠들면서 내려왔는데 한국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내 전공을 영어로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학원에서 배운 것들 머리 굴려가며 써먹으니 어떻게 대화는 되던게 신기했다. 쟤는 원래 영어쓰고 스페인어도 좀 하고 여러 언어 배우는거 좋아한다니 한국말도 좀 알려줘야겠다 큭큭 사진은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들어가는 길에서 무사히 잘 왔다며 우리언니가 찍어준 사진 ㅎㅅㅎ



드디어(ㅠㅠ) 도착하니 4시였다. 웬걸 오만 사람들 다들 먼저 와서 쉬고있었다 그래도 감동의 첫 도착지 론세스바예스ㅠㅠㅠ..잊지모태.. 역시 내가 와방 늦었군 ㅋ하며 들어갔는데 론세스에서 시설 제일 좋다는 3층을 배정받았다. 좋은건 지 몰랐는데 샤워하려고 1,2층 내려가보니 우리층이 제일 좋더라 ㅋㅋㅋㅋ  그 당시에는 걍 내 누울자리 하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었다. 도착하고나니 비가 오고 기온이 훅 내려갔다. 으슬으슬 추워질 참에 뜨순 물에 샤워하고 엄마가 챙겨준 휴족시간을 발에 붙였다. 저녁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기에 쉬면서 연락이 안돼 장시간 걱정한 어무니께 생존신고를 하고.. 우리언니랑 크렉이랑 빨래거리 모아서 빨래도 했다. 근데 크렉이 내 헤어밴드 빼놓고 와서 잃어버림



까미노를 시작하고 처음 드린 미사.​


저녁식사로 먹은 닭고기까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