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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5.16 까미노 데 산티아고 6일차 : 에스떼야~로스 아르고스(Los Arcos), 우리만의 축제


온전히 혼자 걸은 날. 동행이랄게 있을까? 그저 내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어제 밤 언니 오빠들은 밤이 늦도록 와인을 마셨는지 다들 못 일어난다. 그래서 조용히 준비해서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내려왔다. 새벽같이 준비해 주방에서 아침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보았다. 나는 내 가방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던 니트 가디건을 버렸다.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하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그렇게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길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 데카트론 가느라고 걸었던 길을 따라 다시 한번 걸으며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시골길에 들어선다. 



쭉 늘어선 포도밭과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태양이 아름다운 새벽이다.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 수도꼭지! 거의 아침 7시쯤 도착했다. 아침 몇시부터 와인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혹여나 그 시간대가 아니면 어쩌지 했는데 앞서 걷던 사람들이 물이 담긴 페트병을 비워 와인을 채우고 있었다. 나도 담아갈까 하다가 작은 페트병 뚜껑에 살짝 남아 목만 축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아예 못보고 지나친 사람도 많고, 운영시간이 아니라서 와인을 마셔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운이 좋았군,,,,ㅎㅂㅎ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도착한 첫 마을. 딱 쉴 타이밍에 카페가 나와주었따. 주문할때 카페 콘레체 우노 플리즈 (검지를 치켜듬) 하면 준다. 호로록.. 콘레체 한 잔과 가방에 챙겨뒀던 초록색 사과 한 알을 먹었다. 옆 자리에는 약간 산악동호회 느낌나는 한국인 아줌마아저씨가 앉아계셨다. 훨씬 먼저 출발했는데 벌써 왔냐며 놀라심. 거의 다 마시고 출발할 때 쯤 멀찍이서 걸어오는 예지언니와 진님을 보았다. 인사하고 출발~_~!



요기도 바가 있었지만 ​휙



 말로만 듣던 메세타가 슬슬 시작되는걸까 생각했던 길. 진님이 뒤에서 날 봤다는데 내가 슝 가버려서 도통 따라잡을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같이 걸을 때보다 혼자 걸으면 말할 사람두 없고 해서 걸음걸이가 더 더더 빨라지는 것 같긴 했다.



요 신발은 최근에 다녀온 사람 사진에도 고대로 있더라​



활 모양의 마을이라고 불려진다는 로스 아르꼬스에 도착했다. 나름 무난하게 느껴졌던 코스. 4~5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알베르게가 12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는데 시계를 보니 11시 4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3등으로 와서 신발 벗고 앉아서 발 말리면서 쉬었다. 먼저 온 외국인이 킨더 쪼꼬렛 까먹는데 하나줬다. 헷 

 12시가 되어 크레덴시얄을 들고 체크인 하는데 넌 젊으니까 2층써도 되지? 당근ㅇㅇ 그래서 오늘도 2층 침대를 배정 받았다. 씻고 쉬고 있으니 첫 마을에서 만난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가 오셨고, 나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시게 되었다. 호다닥 빨래도 해서 널었다. 그와중에 언니랑 오빠들은 늦~게와서 아예 다른 건물 씀. 그리고 결국 왼쪽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막 심한 물집은 아니었는데 초기에 터치는게 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어른들께 부탁드렸는데 마침 아래 침대 쓰시는 아주머님이 챙겨오신 바늘하고 실로 터뜨려주셨다. 9ㅅ9 감사합니다... 

 요기 부엌에 앉아서 파스 바르면서 다리 마사지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좐이 나한테 이름을 물어보면서 자기 수첩에 직접 적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You're welcome을 한국말로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다. (곰곰)...글쎄 뭐라고하지 생각하다가 <천만에요.>를 알려줬다. 다시 생각해보니 넘나 교과서적이었다. 근데 딱히 대체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참 잘도 요리해먹는다. 냄새가 넘 조와서 한입 달라고 할뻔


 에스떼야에서 머무를 때 처럼 돈 모아서 장보고 요리해먹기로해서 시에스타가 끝난 뒤 마트를 찾았지만 장사 욘나 지맘대루하는 것...저녁 밥은 결국 레스또랑에서 사 먹었다. 글구 예지언니 일행 중에 데세랄 들고 다니는 오빠가 있었는데 이야기해보니 나중에 유투브 연재를 해볼까 생각중이시란다. 유투브 오빠는 늘 댕댕이마냥 털 북실한 마이크와 고릴라 삼각대가 달린 데세랄을 옆에 끼고 다닌다. 지은언니는 질색을 했닼ㅋㅋㅋ 카메라가 넘 부담시럽다고



 여튼 예지언니 일행의 친구인 얀이 오늘 생일이라고 하여 요렇게 모여 파티하는데 나랑 지은언니도 합석했다. 솔직히 말은 안 통하는데 ​뭔가 그 시간안에서 통하는 것들이 있나보다. 한두명씩 나와서 가져온 악기로 연주를 하고 노래도 했다. 유투브 오빠도 좐의 기타를 빌려 기타연주를 보여주고, 함께 걸으시는 어머님이 즉석에서 아리랑을 불러주셨다.  감-동



기타메고 걷는 좐. 마을마다 버스킹을 한다. 이번에도 자작곡을 한 곡 멋드러지게 뽑아주었따. 10시가 다 되가는 시간 이제 치우라고 해서 같이 좀 치우고, 다른 사람들은 더 앉아있다가 들어갈 모냥이길래 슬쩍 들어와 잤다.

내일은 거의 30km를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