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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류

2017.06.13 에필로그 3 : 올베이로아(Olveiroa)​ ~ 피스테라(Fisterra), 세상의 끝


ㅎㅎㅎㅎㅎ


날씨가 흐렸다. 매일 아침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이나 비가 올 것 같은 날이었다. 출발하기 전 어제 밥먹었던 레스토랑에서 지은언니와 함께 토스타다와 콜랑카우를 마시고 세요를 찍었다. 좀 늦게 나왔더니 길에 순례자가 많이 보였다. 

묵묵히 걷다보니 말로만 듣던 무시아와 피스테라로 나눠지는 갈림길이 나왔다. 언니와 나는 사진을 남기고서 내일 버스타지 말고 꼭 길에서 보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혹시라도 이제 못볼 수 있으니 서로를 안아줬다. 언제나 그렇듯 헤어짐은 아쉬웠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두운 하늘은 길 끝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를 뿌렸다. 비아리츠 해변 이후 30여일 만에 처음 보는 바다는 매우 흐렸다.

Cee까지 바가 없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걸었지만 역시 힘들었다. 초입에 바가 보이자마자 들어가서 또르띠아와 콜라 한 잔을 마셨다. 점심쯤이었다. Cee에서 나오다가 길을 좀 헤멨고 또 예상치 못한 오르막들과 씨름하며 열심히 걸었더니 저 멀리 피스테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7km 전.

쉬고 싶었는데 쉴만한 곳이 없어 그냥 무작정 걸었다. 넘 힘들어서 아 낼은 버스타야지 무조건.. 아 이제 그만 걷고싶다 이러면서 걷다보니 피스테라 초입에 있는 해변가가 나왔다.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그쳤고 해변 들어가기 전 작은 부스가 있었는데, 다들 거기앉아서 쉬길래 나도 냅다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시켰다. 바다 보면서 또 한참 쉬었더니 금새 알딸딸해졌지만 진짜 좋았다. 그리고 신발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열받은 발도 식히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다, 첨벙첨벙했떠니 옷은 드러워졌는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어 이 곳 피스테라까지 어떻게 오긴왔구나

단톡방에서 연락했던 지영님이 예약해주신 사립 알베르게에 체크인하고 후딱 나와 공립 알베르게에서 완주증을 받았다. 그 종이 한장이 왠지모르게 허무해졌다.

무튼 지영님을 만나 맥주 한 잔과 간단히 배를 채우고 씻고 쉬다가, 마을 구경하고 저녁 8시가 다되서야 사람들과 등대에 있는 0km 표지석을 보러갔다. 표지석까지는 3.5km, 왕복 7km니 오래걸리긴 했지만 표지석을 보고, 또 바위에 앉아 해가 질 쯤 바다를 보는데 날씨가 기가막히게 개면서 그 풍경이, 경치가 눈물나게 아름답고 황홀할 지경이었다. 

표지석의 숫자는 줄고 줄어 0이 되었고, 나는 그들이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곳에 와있다.